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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9. 19世 〉18. <부정공>통정대부명능참봉운파공휘용환행장(通政大夫明陵參奉雲坡公諱龍煥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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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부정공>통사랑목능참봉공휘영율묘표(通仕郞穆陵參奉公諱永律墓表)
通仕郞穆陵參奉公諱永律墓表 不佞以趙君炳寬之請銘其先王考通政公之墓矣炳寬又以其族祖參奉公事狀求爲表阡文不佞一之巳僭其可再乎謹按公諱永律字致聖趙氏系出玉川高麗侍中諱璋其鼻祖也自是名卿顯士譜牒相望玉川府院君號農隱諡忠獻諱元吉副正號虔谷諱瑜諱大承奉事諱珏最著曾祖曰新命祖曰廷直 贈司僕寺正考曰珍祥妣長澤高氏時昇女淸州韓氏東臣女公韓氏出也稟質厚重性度仁愛早年失怙家甚貧率二弟侍母夫人流離困苦無所不至而晨昏供奉一心靡懈每以菽水屢空爲至恨竭力耕稼家計稍贍則甘毳之養不欲以三公煥鄕隣莫不感歎及弟娶婦析箸田宅器不皆預備窘跲或有傾頓輒復賑給二弟俱亡撫育孤姪十數男女隨長畢婚使各安業嘗與三從兄通政公褘同堂知巳門內事無巨細必須咨稟凡爲先補宗之節賙窮恤匱之政同一其揆而無差殊焉己丑遭艱白首哭擗見者流涕 高宗癸巳筮仕通仕郞穆陵參奉辛亥三月二十九日卒距其生 憲宗庚子享年七十二葬遷于同福外北面陽地白虎嶝中節負酉原齊宜人尙州朴氏仁培女事姑孝處姊姒得歡心後公五年丙辰十二月六日卒墓本面文川里後酉坐育一男一女男仲根女適濟州梁鉷默仲根男炳默炳台餘不盡錄嗚呼維此陽地四尺之封即仁孝君子之藏百世之下愼勿道路樵牧於其上 月城 崔永祚 撰 통사랑목능참봉공휘영율묘표(通仕郞穆陵參奉公諱永律墓表) 내가 조 병관(趙炳寬)군의 부탁으로 그의 선왕고(先王考) 통정공(通政公)의 묘에 명(銘)을 썼었는데、 병관(炳寬)이 또 그의 족조(族祖)·참봉공(參奉公)의 행장을 들고와서 묘도에 표할 글을 청한다。 내가 한번도 참람히 한일 인데、 두번씩이니 해도 될지 모르겠다。 삼가 살피건데、 공(公)의 휘는 영률(永律) 자(字)는 치성(致聖)이다。 조씨(趙氏)는 옥천(玉川)이 관(貫)이며 고려시중(高麗侍中) 장(璋)이 그의 시조(始祖)이다。 이로부터 명경현사(名卿顯士)가 많이 나왔으나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호(號) 농은(農隱) 시(諡) 충헌(忠獻)인 원길(元吉)과、 부정(副正) 호(號) 건곡(虔谷)인 유(瑜)와、 현감(縣監)인 지곤(智崑)과 현감(縣監)인 대승(大承)과、 봉사(奉事)인 각(珏)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공(公)의 증조(曾祖)는 신명(新命) 조(祖)는 정직(廷直) 증 사복시정(贈司僕寺正)、 고(考)는 진상(珍祥)이며、 비(妣)는 장택고씨(長澤高氏) 시승(時昇)의 딸과、 청주한씨(清州韓氏) 동신(東臣)의 딸인데、 공은 한씨(韓氏)가 낳았다。 공은 성품이 후중하고 인애하였는데、 일찍 부친을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두 동생과 함께 모부인을 모시고 많은 곳을 떠돌아 다니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모친 봉공하는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석으로 봉양하지 못할 때가 많아 그것을 한(恨)한 나머지 몸소 일을 하고 살림을 꾸려나가더니 점점 넉넉해지자 모친 봉양하는 그 즐거움을、 삼공(三公)과도 바꾸지 않을 듯하니 고을이며、 이웃에서 모두 감탄하였다。 아우가 장가들어 분가할 때 전택(田宅)과 물건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군색함이 없게 하였고、 어쩌다 잃게 되면 다시 나누어 주었으며、 두 아우가 모두 죽어 어린 조카들을 보살펴 십여명이나 되는 그들을 성장함에 따라 혼인을 시켰다。 공은 또 삼종형(三從兄)되는 통정공(通政公)과 의동당지(褘同堂知)로 문중의 큰일이나 작은일을 모두 물어서하고 위선 보종(爲先補宗)의 절차와、 주궁휼궤(賙窮恤匱)의 정책에 있어 그 규모를 같이하고 조금도 차이를 두지 않았다。 기축(己丑)년 모친상을 당하여 백수(白首)로 울부짖으니、 보는이도 눈물을 흘렸다。 고종(高宗)계사년에 통사랑(通任郎) 목릉참봉(穆陵參奉)을 처음하고、 신해(辛亥) 三월 二十九일에 세상을 떠났다。 헌종(憲宗) 경자년에 태어났으므로 향년이 七十二세였 다。 공의 묘는 동복(同福) 외북면(外北面) 양지리(陽地里) 백호등(白虎嶝) 유원(酉原)이며、 부인은 상주박씨(尙州朴氏) 인배(仁培)의 딸인데、 시부모께 효도하였으며 시누이 동서간에도 환심을 얻었다。 공보다 五년 뒤인 병진년 十二월 六일에 세상을 뜨니 묘는 본면 문천리(文川里) 유원(酉原)에 있으며、 一남一녀를 두었다。 남은 중근(仲根)이며 여는 제주(濟州) 양공묵(梁錯默)에게 출가했다。 중근(仲根)의 아들은 병묵(炳默) 병태(炳台)요。 나머지는 다쓰지 않는다。 아! 양지(陽地)땅、 이 四척(四尺)의 무덤은 인효(仁孝)한 군자(君子)를 모신、 곳이니 백세 후에라도 이곳에 도로나 초목(樵牧)이 범하지 말지어다。 월성(月城) 최영조(崔永祚)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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